사회 사회일반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모호한 규정 재정비해 편법 막아야" [편법에 찌든 공무원 고용]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8 17:55

수정 2020.02.18 21:57

(下) 전문가 진단
1급 이상 퇴직 공직자
일정기간 취업 금지 등
꼼수 막을 엄격한 기준 필요
고위 공무원들의 퇴직 후 일정기간 민간기관 취업을 막는 퇴직공직자 취업제한제도가 사실상 '퇴직허용제'로 변질되면서 법률의 허점을 파고든 시행령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과 같이 퇴직 공직자와 유관기관과의 접촉을 원천금지하고, 위반 시 강한 처벌 규정을 도입해 민관유착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와 동시에 호적상 주민번호를 변경하는 '꼼수'로 정년을 연장하는 등 공직사회의 도덕적해이를 막기 위해 공직사회 연봉체계를 직무급제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애매모호한 시행령 허점 도마

18일 복수의 전문가들은 취업제한 판정을 받은 퇴직 공직자들이 편법으로 재심사를 거쳐 취업승인을 받을 수 있는 주요 근거로 모호한 시행령 규정을 꼽는다.

예컨대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34조 3항 1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취업이 가능한 특별한 사유'를 보면 '국가안보상 이유, 국가의 대외경쟁력 강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취업이 필요한 경우'가 해당된다. 9개에 달하는 각호에서 정한 취업승인사유 중 정량적 기준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퇴직 공직자가 취업하고자 하는 기업이 재취업제한기업 리스트에 있거나 퇴직 전 담당업무와 겹치는 등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해도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공공의 이익 등을 내세울 경우 얼마든지 취업 승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영원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안전팀장은 "법령 위반 소지가 없도록 시행령을 통해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었다. 현재 법적 테두리에서라면 문제가 될 소지가 단 하나도 없다"면서 "1급 이상 퇴직 공직자의 취업을 일정기간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는 시행령을 법률로 끌어올려 명확히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자 심사대상 기준을 낮추는 대신 고위 공직자에 대해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한 11명에 불과한 공직자윤리위원이 전부처에서 평균 4~500명, 많게는 1000명 가량 되는 취업심사 대상자를 세밀하게 평가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박 팀장은 "모든 정부부처를 대상으로 취업심사를 하는 공직자윤리위의 과도한 업무 부담이 졸속 심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내부 신고·처벌 규정 정비해야"

고위 공직자 출신 인사가 퇴직 전 기관에 업무 관련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민관유착을 막을 수 있도록 내부 신고규정 정비 및 처벌 규정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취업을 원천 제한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퇴직 공직자와 접촉을 막는 행위 자체를 제한한다. 실제 고위직은 퇴직 후 1년간 재직 당시 소속 기관 공무원과 모든 접촉을 할 수 없고, 최고위직은 퇴직 후 2년동안 재직 당시 모든 부처 공무원과 접촉이 허용되지 않는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부정한 청탁과 알선이 아니더라도 업무 관련 퇴직 공직자와 접촉했을 경우 이를 신고하도록 해 불필요한 접촉을 줄인다면 민관유착이 부패로 이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외부활동 금지 등 '행위제한'을 골자로 무소속 채이배 의원이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안'을 발의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실종된 채 법안 폐기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시행령 규정이 모호하게 설계됐다는 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공익을 위한 사익 침해 가능성을 감안할 때 현재로선 시행령을 보완하기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공직자윤리법은 1981년 제정 이래 계속 강화되고, 심화된 법"이라며 "보이지 않는 민간유착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꼼수' 정년연장에 임금 개편 주장도

공직사회에 만연한 정년연장을 목적으로 한 호적상 주민번호 변경은 사실상 법적으로 막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앞서 대법원이 지난 2009년 주민등록 정정 시 공무원들의 정년 연장도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꼼수' 정년연장을 통한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업무의 성격, 난이도, 책임 등에 따라 연봉을 지급하는 직무급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직급과 비례해 연봉이 자동으로 오르는 현행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고서는 정년 연장에 따른 비용 부담이 날이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어서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장은 "정년을 연장하면 당연히 인건비 상승이 불가피하다.
"정부도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노조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면서 "법적 판결은 어쩔 수 없는 만큼 임금체계를 개개인의 생산성에 맞도록 바꾸면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김학재 송주용 심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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